이사야 43장 1절은 표면적으로는 짧은 구절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통해 이사야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장면과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교차됩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사용은 하나님의 창조주와 자비로운 성품을 드러내며,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 Knowledge Map
- 문법적 분석: 주어와 동사의 관계, 부사의 역할
- 신학적 해석: 야곱과 이스라엘의 의미
- 창세기와의 연결: 창조와 조성의 히브리어 의미
- 이사야의 역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
20. 이사야 43장 1절 장면묵상
아래 이사야 43장 1절을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읽고 난 후에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물었습니다. 생각은 무슨... 그냥 자주 보고 듣던 그 말씀이지. 사실 빨리 읽으면 10초도 안 걸릴 짧은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 안에는 보석과 같이 놀라운 말씀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보석들을 별다른 수고도 없이 쉽게 얻으려고 합니다. 보석과 같은 말씀을 찾으려면 깊은 갱도에 들어가서 땀을 흘리며 흙을 파내는 것과 같은 수고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문장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글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글의 법칙에 근거해서 이해하면 더욱 정확한 이해가 되겠지요. 첫 문장의 주어를 보면 "여호와"이고 이에 관련된 동사는 "말씀하시느니라"입니다. 이 동사를 수식하는 "이제"라는 부사 때문에 동사의 정확한 의미는 "지금 말씀하시고 있는 중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장면을 누가 듣고 있는 중입니까? 당연히 이사야서를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이겠지요. "야곱아 ... 이제 말씀하시느니라"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고 있는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야곱아" 또는 "이스라엘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 아니면 이사야 선지자이겠지요. 이어지는 본문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라는 문장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이사야가 "야곱아" 또는 "이스라엘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셨다면 본문은 "야곱아, 내가 말하느니라"로 고쳐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1절 전부가 이사야의 말은 아닙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로 시작되는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이후의 문장 주어는 분명하게 "내가"라고 쓰고 있지요. 결국 이사야 43장 1절 안에는 이사야가 말씀을 받는 장면이 앞에 있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뒤에 들어 있는 셈이지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왜 같은 사람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요? "야곱"과 "이스라엘". 여기서 야곱과 상관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고 이스라엘과 상관된 하나님은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하신 창조주로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인간은 마치 죄인과 같아서 이사야는 "사기꾼"이란 의미를 가진 "야곱"이란 칭호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요? 창세기 2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직접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직접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는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지요. 이런 하나님은 싸움에서도 져주시기도 하시는 정이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하나님과 싸움에서 이겼다"는 뜻을 내포한 이름인 "이스라엘"과 연관시킨 것이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실 본문에 "창조하다"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하시니라"란 히브리어 "바라"와 같고요. 본문에 "조성하다"는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을 "지으시고"에 해당하는 "야챠르"란 동사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