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sight

기독교인은 십자가의 도를 닦는 수도자로서, 물리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도심에서도 도를 닦을 수 있음을 보여주셨으며, 기독교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종교입니다. 참된 신앙은 외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의 마음에 있으며, 영성독서는 성경의 문자 뒤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모습을 찾는 수련법입니다. 영성독서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관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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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도하는 크리스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의 도(道)를 닦(修)는 수도자(修道者)"가 되는 것이지요. 수도원에 계신 분들만 수도자가 아니라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 사는 분들도 기독교인이라면 도를 닦는 수도자가 되어야 하지요. "수도자"라 하면 일반적으로 세속과 떨어진 조용한 장소에서 오직 도를 깨닫기 위해서 생활하는 사람을 말하지요. 사실 도를 깨달으려면 세속을 떠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겠지요. 만일 그런 방법밖에 없었다면 기독교는 깊은 산속이나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성장해왔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한적한 광야나 사막을 찾으시기보다는 당시 상업적, 정치적으로 분주했던 갈릴리 지방 큰 도시들이나 수도 예루살렘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서도 도를 닦는 수도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예수님에 의해서 소개된 기독교는 시간이나 장소와 같은 물리적인 기준에 의해 제한받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오래전 구약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이란 한 장소에서 직접 대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글자로 기록된 모세의 율법책이나 전통적으로 지켜온 관습들이 있었지만 그것에도 제약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왔습니다. 오히려 율법이나 관습에 붙잡혀서 사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중심은 사람 속 즉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참 기독교인인 셈이지요.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모습이 아니라 속에 감추어져 있는 마음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지요. 아무리 훌륭하게 지어 놓은 성전에 들어 가 있더라도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나는 신앙인이 아니지요. 겉으로 허술해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 있더라도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거기가 성전이요 천국인 셈이지요. 신앙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경험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과거에 경험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경험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이런 생활로 인도하는 수련법이 곧 영성독서(Lectio Divina)입니다.
영성독서는 오늘날처럼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과학적 역사 비평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내가 생활하고 있는 장소에서 성경 말씀을 하나의 실체로 경험하려고 추구하는 수련법입니다. 영성독서를 했던 수도사들은 묵상을 통해서 성경 속 현장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예를 들면 불붙는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신을 벗고 있는 모세 곁에 같이 서 있는 자신을 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설교를 하실 때 듣고 있는 청중들 가운데 끼어있는 자신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피를 흘리고 계신 예수님 발밑에 서 있는 자신을 보려고 했습니다.
영성독서는 성경에 기록된 문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자 뒤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찾기 위해 수도하는 수련법이지요. 그래서 영성독서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고요한 빛 아래서 또렷이 보려는 관조 또는 조명 (觀照, contemplatio)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해 문자에서 영으로 승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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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https://biblekim.com/03_수도하는_크리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