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믿음
일자: 2025-12-07 | 본문: 하박국 2:1-4
1. 말씀 기도(다같이):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오늘 우리를 부르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위선과 자기중심을 돌이켜 회개하오니, 절망의 늪에서야 손 내미는 늦은 마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메마른 심령에 주님의 숨결을 불어넣어 하늘의 생기로 충만케 하시고, 잃어버린 축제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 귀를 열어 주의 세밀한 음성과 이웃의 신음을 듣게 하시고, 눈을 씻어 굳은 마음을 제거하여 부드러운 새 마음을 주옵소서. 혀를 지켜 살리는 말과 생명을 일깨우는 말을 하게 하시며, 침묵의 우물에서 맑은 샘을 길어 올리는 지혜를 주소서. 교회를 주께서 계신 자리로 세우사 가장 작은 자 안에 오시는 주를 알아보게 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손과 발로 써서 연대와 나눔의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굳은 심령을 깨우시고,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 되어 삶에서 귀한 열매 맺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마음열기: 사람이나 물건이나 시간에 관련하여 경험했던 “기다림”에 대한 추억을 나누어봅시다.
3. 찬양하기(찬송가):
4. 본문읽기(인도자): 하박국 2:1-4절을 함께 읽습니다.
5. 본문 이해:
하박국의 시작은 항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니 어느 때까지입니까”라는 탄식은 신앙의 가장 밑바닥 같은 자리를 드러냅니다. 그가 바란 것은 사적인 성공이나 욕망이 아니라, 의가 악을 이기고 땅에 정의가 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대 하나님은 뜻밖의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겠다고 하십니다. 더 선한 결과가 오기는커녕 더 큰 심판과 고통이 앞당겨지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다시 항의합니다. 주의 눈은 정결하신데 어찌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자를 삼키도록 두시느냐고, 정말 하나님이 의로우신 통치자이시라면 왜 가만히 계시냐고.
하나님은 다시 응답을 주십니다.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겨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첫째,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사랑하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의 감정과 해석이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이 묵시는 반드시 응하리라,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셋째, 그 성취에는 정한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종말은 속히 이를 것이나,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우리의 체감에는 더디지만, 하나님의 시계는 결코 늦지 않습니다. 신앙의 갈등은 여기서 자주 생깁니다. 우리는 때와 방법을 우리가 정하고 그 기준으로 하나님을 재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 때가 아니라 주의 때를 배우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성취는 내 생애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약속은 손에 쥔 결과보다 더 큰 규모의 역사 속에서 실현됩니다.
응답이 항상 최선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눈물의 기도 끝에 15년을 더 받았지만, 그 이후 마음이 교만해져 받은 은혜로 보답하지 못했음을 성경은 기록합니다. 응답 자체가 목적이 되면, 은혜의 주가 아닌 나를 높이기 쉬운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세 번 간구했으나 들은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한 마디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자고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읽었습니다. 때로는 응답하지 않음이 더 깊은 사랑일 수 있고, 하나님의 최선은 우리의 계획보다 더 정확히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더 큰 스케일에서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시지만, 동시에 바벨론도 심판하십니다. 공의는 긴 역사 곡선 속에서 완결됩니다. 하박국은 당대의 회복을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더 크고 긴 역사를 가리키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시야를 교정받습니다. 내 시대의 안도와 성취만을 신앙의 척도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현재를 해석합니다. 믿는 대로 현실이 즉시 따라오지 않아도, 하나님 자신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하박국의 마음이 바뀝니다. 재앙의 소식 앞에서 그의 창자가 흔들리고 무릎이 후들거릴 만큼 두려웠지만, 결론에서 그는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변화의 이유는 환경 개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성숙입니다. 기쁨의 근거가 조건에서 주님 자신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