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2)
일자: 2025-11-09 | 본문: 요한복음 1:1-14
1. 말씀 기도(다같이):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이름으로 임재 앞에 모인 자녀들로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연약을 고백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는 죄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보화를 두시고, 깨어짐보다 보혈을 보시며 성화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인내에 감사드립니다. 말씀의 약속이 창조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절대적 말씀임을 믿사오니, 그 말씀 따라 살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옵소서. 시대를 분별하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을 주셔서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성도로 깨어나 인내와 오래 참음으로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뜻과 감정을 다스리셔서 삶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 순종하게 하시고, 마지막 날 많은 영혼의 구원을 소원하게 하옵소서.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께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마음열기: 이번 주에 “감사합니다”를 직접 말해 본 순간이 있나요? 그때 상대의 표정은 어땠나요?
3. 찬양하기(찬송가):
4. 본문읽기(인도자): 요한복음 1:1-14절을 함께 읽습니다.
5. 본문 이해:
예배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열고 “아멘”으로 받는 순간, 그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이 됩니다. 우리는 11월을 감사의 달로 삼아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감사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신자의 기본자세이며, 실제로 삶의 지표와 연결됩니다. 감사의 빈도는 행복과 비례하고, 불평의 빈도는 불행과 비례하지요. 그래서 먼저 우리 속회 안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감사합니다”를 생활합시다.
영광의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말한다면 ‘엘 카보드’라고 합니다. 여기서 ‘카보드’의 본뜻은 ‘무게’이지요. 하나님이 임하실 때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 것은 가벼운 감동이 아니라 무거운 임재입니다. 동시에 영광은 ‘빛’이기도 하지요. 가벼워 보이는 빛이 어떻게 무거울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빛이 꽉 차길래 무거울까”라고 묵상해보기도 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이 오시면, 그분의 존재가 우리의 내면에 무게를 더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모실 ‘의자’, 곧 보좌를 준비해야 하지요. 내 마음의 중심에 주님이 앉으실 자리를 비우고 정돈하는 것, 이것이 예배의 준비입니다.
구약은 이 보좌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방, 곧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의자 곧 ‘법궤’의 뚜껑인 ‘시은좌’가 있습니다. 시은좌는 다른 이름으로 ‘속죄소’라 불립니다. 금으로 쳐서 만든 두 그룹 즉 두 천사가 날개를 펴서 그 자리를 덮고 있지요.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증거판, 곧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5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 속죄소 위에서 곧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죄소는 죄 사함이 주어지는 자리, 은혜가 흘러나오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구하는 자는 하나님이 계신 그곳, 말씀 앞, 속죄소 앞에 나아와야 하지요.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죄와 허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죄와 허물은 속죄소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야만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거기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 때문이지요.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생각이 아니라 ‘거하심’ 곧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머물다 가는 스침이 아니라 함께 사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그분의 무거운 영광을 모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이 중심에 놓인 법궤처럼,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말씀을 모시고, 그 위에 자비의 좌석을 펼쳐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고 가르치시며, 죄를 용서하십니다. 감사는 그 보좌를 부드럽게 하고, 찬양은 그 보좌를 든든하게 지탱해줍니다. 우리 속회 속도원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향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교회나 속회는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배는 태도의 문제이자 구조의 문제입니다. 태도는 감사와 아멘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구조는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보좌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그 속죄소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자답게 다시 감사와 찬양으로 살아나가는 것이지요. 이 간단한 순환이 우리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고, 불평의 고리를 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