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기도
일자: 2022-02-13 | 본문: 마태복음 26:36-46
1. 말씀 기도(다같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36절)” 예수님은 다음 날이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마지막 모습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기 위해 기도로 준비하셨지요. 제자들에게도 다가올 시험을 대비하라고 기도하시는 자리에 함께 데리고 가셨습니다. 성령님, 우리도 예수님처럼 항상 먼저 기도로 준비하는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어떠한 시험과 환란에서도 담대하게 승리하는 십자가의 용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마음열기: 크리스천에게 시험이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나누어봅시다. 혹시 시험에 빠졌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봅시다.
3. 찬양하기(찬송가):
4. 본문읽기(인도자): 마태복음 26:36-46절을 함께 읽습니다.
5. 본문 이해:
내일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신앙의 모습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생활 속에서 가족들이나 이웃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41절)”고 하시면서 기도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유혹이나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시험에 빠지게 될 제자들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몹시 괴롭고 슬펐습니다(37절). 예수님은 몇 시간 후면 일어나게 될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기는 것을 알고 계셨지요.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군사들에게 잡혀가게 될 때에 모두 도망치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수제자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것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밤을 지새우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중간에 오셔서 잠든 제자들을 깨우셨지요. 예수께서 깨워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잠에 빠져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모두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우리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집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생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영적인 호흡과 같습니다. 우리 몸이 매순간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크리스천은 매 순간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장소는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을 말합니다. 올리브는 11월 초에 열매를 따서 기름을 짭니다. 이때에 올리브 색깔이 녹색에서 검은 색으로 변하면서 열매에 기름이 가득차기 시작합니다. 열매를 “겟세마네” 곧 “기름짜는 틀”에 넣고 네 번에 거쳐 기름을 짜냅니다. 처음 짜낸 기름은 성전에 바쳐 성전 촛대를 밝히거나, 왕 또는 제사장에게 기름 부을 때에 사용합니다. 두 번째로 짜낸 기름은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합니다. 세 번째 짜낸 기름은 등잔불 밝히는 데, 여인들 화장품, 또는 약품으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에는 아주 무거운 돌을 얹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기름을 짜내는데 이 기름에 잿물을 부어 비누로 만들어 사용하지요. 이렇게 마지막까지 기름을 짜내는 틀을 겟세마네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마치 기름을 짜듯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22:2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기도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순종하시는 기도였습니다. 비록 다음날 고난, 멸시, 천대,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이라면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였습니다(4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