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름

일자: 2020-03-01 | 본문: 마가복음 10:17-31


1. 말씀 기도(다같이):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 우리도 이 사람처럼 영생에 대해서 갈급한 심령을 갖게 하여주시옵소서. 교회를 다녀도 영생에 대한 관심도 없이,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이,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이 신앙 생활하는 어리석은 크리스천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지어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본인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는지 마음이 공허한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병든 크리스천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래 교회생활하고도 나중에 지옥으로 가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우리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마음열기: “삼각관계”란 세 남녀 간의 연애 관계를 말합니다. 이에 관한 드라마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봅시다.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매우 자연스러운 사회 활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혼을 위한 연애는 한 남자와 한 여자와의 관계가 정상적이지요. 한 남자가 여러 여자나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연애 관계를 맺고 있다면 비정상적입니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려면 매우 복잡하고 힘이 들겠지요. 이러한 문제점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누는 이유는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피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지요. 즉 하나님만을 최우선으로 사랑해야 함에도 하나님을 두고 다른 것을 사랑하는 신앙의 삼각관계를 생각해보기 위함입니다.#### "마음 열기"는 일반적으로 Icebreaker 시간으로 속도원들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마음 열기"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 인도자는 시작하기 전에 제한 시간을 알려주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마음 열기" 시간은 15분 정도로 합시다”라고 말하고 시작한다. "마음 열기"의 질문은 제목에 연관된 것으로서 인도자는 전체 내용을 숙지하고 “마음 열기”의 대화 내용을 이끌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빠질 수 있다. 속회를 인도하다보면 분위기가 차가워서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마음 열기”를 통하여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면 이후 진행이 매끄러워질 수 있다.

3. 찬양하기(찬송가):

4. 본문읽기(인도자): 마가복음 10:17-31절을 함께 읽습니다.

5. 본문 이해: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에도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본문 17절의 “한 사람”을 청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19:22). 누가복음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거기서는 이 사람을 관원 즉 관리직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요(눅 18:18). 그러면 이 사람은 젊은 나이에 비교적 괜찮은 관리직에 오른 사람으로 사회적으로 볼 때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본문 22절을 보면 이 사람은 재물이 많은 부자라고 합니다. 본문에 한 사람은 “부자 청년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친구나 동료들에게 부러움을 살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러울 것 없는 사람에게도 급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급히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꿇어앉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지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재물도 많았고 지위도 높았고 나이도 젊어 성공한 이 사람의 관심은 영생에 있었습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무한하지요. 영원한 생명 그래서 영생이라고 합니다. 영생을 묻는 다는 것은 이 젊은이에게 하나님에 대한 관심 즉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는데 왠지 공허합니다. 재물도 있고 성공도 했는데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정말 천국에 갈 수나 있는지 아니면 영생을 얻을 수나 있는지 불안하기까지 했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도 급히 달려와서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영생에 관한 질문을 물었던 것이지요.
부자 청년 관원은 세상적으로 즉 육신적으로는 아직도 앞날이 창창한 건강한 남자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관원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할 것 없는 부유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는 불안과 공허함과 메마름이 있었지요. 풍성함 가운데 가난함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부자 청년 관원의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19절을 보면 부자 청년 관원의 영생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에 관하여 언급을 하였습니다. 네가 알고 있지 않느냐 배우지 않았느냐 하면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지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계명들을 열거하셨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계명들은 주로 금지 계명이었습니다. 거의 ...을 하지 말라는 계명들이었습니다.
이 젊은 부자 관원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금지 계명들을 모두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합니다(20절). 그러고 보면 이 사람은 비교적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은 비교적 큰 죄악이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죄들이지만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죄들 즉 거짓 증언 즉 거짓말도 하지 않았고 속여 빼앗는 일 즉 남을 속이는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을 배운 대로 정직하게 바르게 살았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려서부터 지켜왔기에 소문난 효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그래도 비교적 괜찮은 신앙생활을 하던 부자 청년 관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영생을 갈구했을까요? 어려서부터 말씀대로 살았다고 자부심이 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에는 영적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말씀을 지켜왔다는 자부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메마름이 있었지요. 어려서부터 지켜왔다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천국을 갈 수 있는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신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왔는데 마음에는 확신과 평안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은 것이지요. 말씀도 순종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마음속에는 영적 공허함과 메마름이 있습니다. 영생, 구원,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계명을 듣고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지요. 본 내용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영생에서 먼 사람이 됩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들을 부분적으로만 지키는 사람도 문제이지요. 즉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지키고 싫은 것은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본문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도 물론 영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됩니다. 더 문제는 어려서부터 즉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영생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이지요. 영생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은 곧 구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부자 청년 관원은 그나마 위와 같은 사람들보다는 낫습니다.
예수께서 그 부자 청년 관원을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21절). 예수께서 그 부자청년을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기 때문이지요. 둘째로는 이 청년이 영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는 사람들을 사랑하시지요. 또한 영생 즉 자신의 구원에 관해 항상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영적 공허함과 메마름을 겪고 있는 이 청년에게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이 왜 신앙생활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지, 영적으로 메마름을 경험하고 있는지,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한 가지가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1절).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예수님은 청년에게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21절). 그렇다면 예수 믿는 크리스천들은 누구나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어야 영생을 받는다는 것입니까?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눅 19:8). 전 재산이 아니라 반만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눅 19:9)”라며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재산의 몇 퍼센트를 내어놓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부자청년에게 지적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은 하나님을 무엇보다 가장 귀하게 여기는 믿음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보다 재물, 재산, 돈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하기는 했는데 속으로는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지요. 청년은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기는 해왔지만 속마음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하고 섬겼던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계명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지 말아야 할 계명이고 둘째는 해야 할 계명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는 하지 말아야 할 계명이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이 계명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본 절에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동안 하지 말아야 할 계명들을 지켰다면 그 다음 단계는 해야 할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계명들은 우리를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성결한 삶을 살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나 해야 할 계명들은 복음을 실천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이끌어줍니다. 하지 말아야 할 계명은 소극적 계명이라면 해야 할 계명은 적극적인 계명이지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적극적인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둘째,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 재물을 붙잡고, 재물을 의지하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따르려면 먼저 내 속에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을 따를 때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아직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결단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명령에 부자 청년 관원은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 마음의 공허함과 영적 메마름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22절에 의하면 이 부자 청년의 재물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습니다. 이 많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이 언급하신 계명들을 비교적 쉽게 지키며 신앙생활 할 수 있었지요. 재물이 많기 때문에 남을 살인할 이유도, 간음할 이유도, 도둑질 할 이유도, 거짓 증언할 이유도, 속여 빼앗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재물이 많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데에도 별고 고민할 것이 없었지요. 하나님의 계명 즉 말씀을 지키는 동기가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재산으로 신앙생활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신앙생활 해 온 것 같은데 본인은 구원의 확신, 영생의 확신이 없이 공허하고 메마른 영적 생활을 해왔던 것이지요. 이 사람에게 신앙생활의 장애물은 곧 재물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이지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에 정답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귀하게 여기는 재물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려놓음” 이것이 부자청년이 가지고 온 영생에 관한 질문을 푸는 열쇠였던 것이었습니다. 청년에게는 이 한 가지가 부족했던 것이지요.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문제 즉 영생에 대한 문제의 해결책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러면 기뻐해야 하는데 이 청년은 오히려 슬퍼하고 근심했다고 합니다(22절). 예수님은 청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그것 재물을 지적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청년은 마음이 찔리고 아팠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재물만큼은 내려놓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해결의 말씀을 받았지만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했습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성경에는 이후에 청년이 다시 예수님께 돌아왔다고 아무데서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와서 나를 따르라고”하셨는데 이 성공한 부자청년은 재물 때문에 가버렸습니다. 재물 때문에 구원도 영생도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 순간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재물과 하나님 둘 다를 섬길 수는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결단해야 합니다. 재물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분명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왔다 갔다하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 크리스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는 그런 사람은 영생과 먼 사람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안다니는 것 같기도 하는 그런 사람은 구원과 먼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이 돌아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가 천국에 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재물 때문에 신앙생활에 지장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25절). 일반적으로 바늘에 실 들어가는 구멍을 바늘귀라고 하지요. 그런 바늘귀에 낙타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에는 들어가는 문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문들에는 각각 이름들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이름 중에 하나가 “바늘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즉 바늘귀처럼 문이 하도 작고 좁아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늘귀는 이 문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여기로 낙타가 들어가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본문에 기록된 대로 아주 매우 힘들고 어렵다고 하지요.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부자들의 구원에 관해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은 부자들도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27절).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을 보면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이나 구원을 받은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는 스스로 도를 닦아서 구원을 얻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같은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면 부자청년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1220년도에 한 부자 청년이었던 프란시스는 자기의 소유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 오늘날 “성 프란시스”라고 불립니다.
베드로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고백합니다(28절).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20)”란 기록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지요.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께서 제자도에 관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을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와 그의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29절). 또한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살려면, 즉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은행에 저축하는 방식입니다. 할 수 있을 때에 드려야 합니다. 건강할 때 몸을 드리고 재물이 있을 때 재물을 드리는 것이 지혜로운 믿음 생활입니다. 능력이 있을 때에 능력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없어질 것들이지요.
예수님을 위해 내려놓고 드리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현세에 백 배나 받는 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30절). 하나님 은행의 이자율은 100배라고 합니다. 그러나 100배를 얻으려면 또한 박해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먼저 드리면 현세 뿐 아니라 내세에도 영생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부자 청년이 갈급해 하던 그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먼저 믿은 자가 꼴지 신앙인이 되고 나중에 믿은 많은 사람들이 모범적인 신앙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31절). 어렸을 때부터 믿었던 부자 청년 관원은 결국 꼴찌가 되었습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신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예수님을 떠나버린 것이지요.

“본문 이해”는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은 돌아가면서 한 단락씩 읽는 것이다. 이 경우 내용이 짧어서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발전된 방법으로 인도자가 내용을 풀어서 직접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하면 속도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본문 이해”의 내용은 이미 전 주에 주일 설교 내용을 다시 기억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6. 질문 나눔: ## “질문 나눔”은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던지는 질문들이다. 즉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를 했는지 확인하는 단계이다.

6.1. 영생에 관해 묻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지켰냐고 물었나요(19절)?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계명을 지켰냐고 물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6.2. 예수님의 물음에 부자 청년은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20절)?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그 계명들을 모두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6.3. 다 지켰다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아직 무엇이 부족하다고 하셨나요(21절)?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아직도 한 가지 지키지 못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것은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년에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서 예수님을 따르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4.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청년은 어떤 결단을 하였나요(22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떠나기로 결단한 것이지요.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다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 돈을 선택한 것이지요.

7. 적용 질문: ## “적용 질문”은 속도원 개인들의 간증, 경험 등에 관련된 질문들이다. 속도원들의 대화 내용이 설교 스타일이 되지 않도록 인도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지식적인 대화는 가능하면 절제를 한다. 추상적인 언어보다는 구상어 즉 쉽게 상상이 될 수 있는 언어가 포함된 자신의 경험 이야기를 추천한다. 그래서 “적용 질문” 단계에서는 인도자가 먼저 자신을 열어놓는 말로 시작해야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앙 상태를 열게 된다. “적용 질문”은 성경 본문과 연관된 개인의 대답을 요구하는 단계이다.

7.1. 오늘 말씀가운데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내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 “7.1”에는 정답이 없다. 개인이 깨닫고 느낀 성경 구절을 대답하는 질문이다. 보통 질문을 하면 속도원들은 잘못 대답할까봐 주저한다. 그래서 인도자가 먼저 대답을 하면 속도원들이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다. 만일 속도원들이 아직 마음을 열지 않으면 인도자의 대답 만 듣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 된다.

7.2. 지금 나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지금 나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 “7.2.”질문은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가 속회에서 항상 물어보라고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신앙생활, 교회생활, 영적생활을 위한 현재 나의 기도제목은 무엇인가?”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사실 이 질문은 서로 신뢰가 두터워졌을 때에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고민이 되는 여러 문제를 나누고 서로 격려와 기도를 하기 위해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인 것이다. 아직 속회 내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으면 이 질문이 아주 어색해보이며 대부분 피상적인 대답들을 한다. 인도자는 속한 속회가 속에 있는 영적 고민과 문제를 거리낌 없이 내어 놓을 수 있는 모임이 되도록 기도하며 이끌어야 할 것이다. 질문의 모든 것을 다 대답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도자는 속회의 목적 즉 속도원들의 영적 성장 즉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주어진 속회 공과 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7.3.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신앙생활에서 나중 되고 있나요 아니면 먼저 되고 있나요?

8. 기도(기도 제목): 예수님,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왔던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결국 떠나버렸습니다. 이 청년은 믿음으로 신앙 생활한 것이 아니라 돈으로 신앙 생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도 돈이 있어서 남들보다 쉽게 지켰습니다. 부자 청년이라 딱히 살인, 간음, 도둑질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거짓 증언이나 속여 빼앗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조차 부자라서 돈으로 쉽게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신앙생활은 심적 불안감과 영적 메마름을 가져 오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한 사람 즉 먼저 믿은 사람이지만 나중에는 믿음을 져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우리는 절대로 돈으로, 직위로, 능력으로 신앙생활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9. 찬양/ 광고/

10.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로 모임을 마칩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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