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기적
일자: 2020-02-23 | 본문: 마가복음 6:30-44
1. 말씀 기도(다같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하나님 아버지, 이 큰 무리들은 배를 타고 떠나신 예수님께서 도착하실 빈들에 먼저 달려가서 하나님 말씀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이 무리들처럼 광야 같은 빈들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가는 갈급함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빈들에 모여든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배부르게 물고기와 떡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사 말씀을 가르쳐주시어 연약한 심령이 강해지고 죽은 심령이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마음열기: 사람은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부족함을 느끼는 걸까요?
위에 질문은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현대 문제를 파헤쳐보는 질문입니다. 현시대의 문제점들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데 마음은 공허해지고 있습니다. 큰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왜 마음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한지 스스로 물어보는 질문이지요. 경쟁사회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겪는 문제들은 어떤 것들인 나누어보는 시간입니다.#### "마음 열기"는 일반적으로 Icebreaker 시간으로 속도원들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마음 열기"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 인도자는 시작하기 전에 제한 시간을 알려주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마음 열기" 시간은 15분 정도로 합시다”라고 말하고 시작한다. "마음 열기"의 질문은 제목에 연관된 것으로서 인도자는 전체 내용을 숙지하고 “마음 열기”의 대화 내용을 이끌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빠질 수 있다. 속회를 인도하다보면 분위기가 차가워서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마음 열기”를 통하여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면 이후 진행이 매끄러워질 수 있다.
3. 찬양하기(찬송가):
4. 본문읽기(인도자): 마가복음 6:30-44절을 함께 읽습니다.
5. 본문 이해:
앞에 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라고 파송하셨습니다. 전도하러 나갔던 제자들이 본 30절에서 돌아온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들이 전도하면서 행했던 것과 가르친 것들을 예수님께 낱낱이 보고를 했습니다. 31절에서 제자들의 보고를 들은 예수님은 수고한 제자들을 한적한 곳에 가서 쉬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가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무리들을 피하여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갑니다. 32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걸어서 예수님이 도착하실 곳으로 먼저 갔지요. 34절에서 예수님은 배에서 내리실 때 기다리고 있던 큰 무리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많은 말씀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때가 저물자 걱정이 되는 제자들은 예수께 나아와 무리를 빨리 보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36). 이유는 그 장소가 아무것도 없는 빈 들이고 시간적으로는 저녁 때가 되어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리를 빨리 보내서 마을에서 무엇이라도 사먹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커다란 고민에 빠졌습니다. 첫째는 광야, 둘째는 저녁, 셋째는 굶주린 무리들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지요. 이들이 예수님께 제시한 해결책은 한시라도 빨리 보내서 스스로 알아서 먹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7)”였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수많은 무리들을 보고 대충 계산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반 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떡을 어떻게 사가지고 와서 무리들을 먹일 수 있느냐고 가능치 않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냥 보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무리들을 먹일 수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지요. 자신들만으로는 도무지 해결책이 나지 않았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때 모였던 사람들이 대략 15,0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돈도 엄청 들지만 그 많은 빵들을 구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자기들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힌 것이지요. 예수님은 광야에서 저녁이 되어 굶고 있는 무리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광야와 같이 거칠고 삭막합니다. 광야에는 물도 없고 길도 없습니다. 생명보다는 죽음이 더 가까운 땅이지요.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장소가 광야입니다. 저녁이 되었다는 것은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어둠처럼 다가오고 있는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도처에 양식이 없어서 굶어 지친 사람들이 널려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이런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 생각으로는 빈들에서 늦은 저녁시간에 15,000명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주저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했습니다(38).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38)”라는 제자들의 말 속에는 이것 가지고 뭐가 되겠습니까라는 의심이 내포되어 있었지요. 15,000명 앞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는 턱도 없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눈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니까 오병이어가 15,000명을 배불리 먹이는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오병이어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하니까 15,000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미디안 광야에 나무토막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토막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니까 바로를 굴복시키는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광야에 반석을 갈라 물을 나오게 하는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물맷돌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당시 냇가에 무수한 돌맹이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다윗이 물맷돌로 쓰려고 골랐던 돌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니까 양떼를 괴롭히던 맹수들을 막아내고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지요.
현대인들은 지금 부족하다고 모자라다고 아우성입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도 빈약합니다. 그런데 빈약한 우리의 것이라도 주께 드리면 주의 능력이 함께 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룹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그것이라도 예수님께 드리면 우리의 계산을 초월하는 결과를 맛보게 됩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오병이어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능력이 없는 빵과 물고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예수님의 손 안에 들어갔습니다. 오병이어는 더 이상 제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내 것일 때는 능력이 없던 것이 예수님의 것이 될 때에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빵, 물고기, 돌, 지팡이 등이 그렇습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 그대로 있을 때에는 예수님을 방해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는 문제 투성이의 나약한 제자였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정작 실력도 능력도 없는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며 3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한다고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지요.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에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겁쟁이 베드로가 담대한 베드로가 되었지요. 사도행전 3장을 보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베드로에게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하면서 그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자 앉은뱅이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앉은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함께하니까 돈을 구걸하던 사람이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함께 하니까 엄청난 변화, 불가능하게 여겼던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오병이어를 받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50명 100명씩 떼를 지어 잔디에 앉히라고 하십니다(39). 즉 먹을 준비를 시키시는 것이지요.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무리들을 말씀대로 잔디 위에 앉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41). 그리고 오병이어를 축복하셨지요. 기도를 드린 후에는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었습니다. 떡을 받은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지요. 물고기 두 마리도 그렇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오병이어가 15,000명을 먹일 수 있게 된 과정에는 축복의 언어가 있었습니다. “축사하시고”란 “축복한다, 찬양한다, 감사한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 비록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축복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찬양할 때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무리들은 제자들로부터 떡과 물고기를 받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떡 조각도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랬더니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둔 것입니다(43). 예수님은 남은 조각에도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리하여 남은 떡과 물고기를 거두게 하셨지요. 그랬더니 부스러기조차도 12광주리나 되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것도 그만큼 된 것입니다. 부스러기조차 풍성한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스러기들을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12광주리에 찬 것 역시 모아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함이었지요. 예수님의 마음은 광야에 저녁에 굶주린 사람들을 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한 광주리도 안 되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부스러기만도 12광주리를 남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