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를 지고
일자: 2019-03-07 | 본문: 누가복음 14:25-35
1. 말씀 기도(다같이): 예수님,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름으로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믿음의 길을 가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2. 마음열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물건을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짊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물건을 나르던 기억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봅시다. 짊어지는 것이 힘들었거나, 특별했거나, 즐거웠거나 했던 기억을 나누어봅시다.
3. 찬양하기(찬송가):
4. 본문읽기(인도자): 누가복음 14:25-35절을 함께 읽습니다.
5. 본문 이해: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5절부터 27절까지는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또는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둘째 단락인 28절부터 33절까지 에서는 갑자기 망대를 세우는 비유와 두 임금의 전투 비유를 말씀합니다. 마지막 단락 34절부터 35절에는 소금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나오지요. 어떤 학자들은 이 세 단락이 서로 연관성이 없다고 하면서 본 단락을 “부스러기 말씀”이라고 별명을 지었습니다. 서로 다른 여러 부스러기 말씀들을 모아놓았다고 본 것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세 단락이 모두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망대와 전투 비유를 기록한 둘째 단락도 마지막 33절을 보면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본문은 전체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27절을 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며 사명입니다. 나의 십자가는 내가 겪어야 할 고난이며 또한 짊어져야 할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무조건 따른다고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25절을 보면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으로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곧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실 것이란 기대였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은 하면서 예수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나에게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지기를 꺼려하고 거부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교회 안에 앉아 있다고 모두가 제자가 아닙니다. 참된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예수님의 지식과 지혜를 배울 뿐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만 예수님이 들어가신 천국에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26절을 보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들이었지요. 문제는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이 따랐던 유대교는 예수님을 반대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족들 가운데에 예수님 믿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가족 아니면 예수님 가운데 한 쪽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에서 미워해야 할 부모나 형제나 자매는 예수님 믿는 신앙을 방해하거나 핍박하는 가족을 가리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십계명 제 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신약의 요한 서신을 보면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맡겨주신 자녀들은 성실하게 돌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도리를 바르게 가르칩니다.
본문에서 “제자”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명칭입니다. 즉 가족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본문에 “미워하지 않으면”은 “더 사랑하면”으로 바꾸어 이해해야 합니다. 즉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10:37절을 보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가족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을 부모보다, 처자보다, 형제나 자매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의 중심이 되고 가정의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가정의 중심으로 모시면 자녀들은 부모님을 더욱 공경하게 되고, 형제자매는 더욱 사랑하고 우애하게 되며, 부모는 자녀들을 더욱 희생적인 사랑으로 돌봅니다. 이런 가정의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당연하게 자신을 공경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욱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형제자매들 역시 자신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권면하지요.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결국 자기중심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 생활로 변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 생각, 내 주장, 내 고집,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은 제자가 될 수도 없으며 자기 십자가를 질 수도 없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이며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26절에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또한 자기 목숨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자가 되려면 목숨을 걸만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28절부터 30절까지는 망대 비유가 나옵니다. 31절부터 32절까지는 두 왕의 전투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결론을 뜻하는 “이와 같이”가 33절에 언급되면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망대 비유와 두 왕의 전투 비유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28절)”와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31절)”입니다. 망대를 세우기 위한 비용을 계산하고 전투 비유에서는 전쟁 군인 수를 계산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은 거지가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는 재물에 대한 관점이 다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보통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모으고 씁니다. 그러나 제자는 하나님을 위해서 재물을 모으고 씁니다. 열심히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버는 것이고 든을 쓰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좋은 데에 돈을 사용합니다.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쾌락과 만족을 위한 재물을 포기하라는 것이지요. 머릿속에 하나님 없이 돈 버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당연히 그 생각을 버려야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이지요.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것이 더 유익한지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망대를 세우려면 여러 가지 재료도 사야하고 다양한 기술자들도 써야합니다. 그 모든 것에 돈이 필요합니다. 29절 말씀처럼 기초만 쌓고 중단하면 보기 웃음거리가 됩니다. 공사를 시작하다가 도중에 중단하면 흉물이 됩니다. 여기서 망대는 구원의 망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구원의 망대를 건축하고 있는 건축자와 같습니다. 구원의 망대를 완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써야 하는지 계산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얼마나 더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얼마나 더 희생을 해야 하는지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33절에서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은 나를 위한 재물은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재물로 사용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망대를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거나, 자신을 더 사랑하거나, 소유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망대를 완성을 위해서 자신의 소유를 온전히 투자한 사람만이 곧 제자입니다. 만 명 군대를 거느린 왕과 이만 명의 군대를 거느린 왕의 비유는 실력, 능력을 헤아리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실력이나 능력 또한 33절에서 “모든 소유”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부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한 마리도 못 잡고 집으로 퇴근하려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때 고기 잡는 데에는 예수님보다 전문가인 베드로는 그 말씀이 거리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씻은 그물을 깊은 데로 가서 던졌습니다. 두 배에 가득 찬 물고기를 보고는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망대 비유는 돈에 대한 말씀이고 두 왕의 비유는 실력 능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 즉 재물이나 실력, 능력 또한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의미는 용도가 바뀐다는 말이지요. 자신만을 위해서 가지고 있었던 재물, 실력, 능력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게 될 때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이기적인 생활에서 이타적인 생활로 변화될 때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단락 34절부터 35절은 소금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제자가 아닌 사람들은 생각의 중심, 생활의 중심이 자신의 가족이나 자기 소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중심이 가족에서 예수님에게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자기의 돈이나 재능 실력 등 소유도 자신만을 위한 사용에서 바뀌어서 이웃을 위해 베풀고, 이웃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지요. 이런 내용을 예수님은 소금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자신의 모습을 버리면서 맛을 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소금이 자신을 던져버림으로 맛을 내기도하도, 부패를 방지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소금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소금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이 어두워 썩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살맛을 내는 영원한 생명을 공급합니다.
6. 질문 나눔:
6.1. 본문 25절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무슨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랐나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곧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실 것이란 기대였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