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영성읽기]
마태복음 12장 1-34절; 시편 119편 15절
[묵상 에세이]
성경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말씀은 눈을 지나 입술을 통과하여 다시 우리의 귀로 돌아옵니다. 시편 기자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고 고백한 까닭이 여기 있지요. 읊조림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가슴의 길을 찾아 들어오도록 마음의 문을 여는 행위입니다. 오늘 그 음성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우리를 자비의 자리로 이끕니다.
배고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을 때, 어떤 눈은 “얼마나 고팠으면” 하고 연민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눈은 율법의 잣대로 정죄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 하시며, 사람을 살리는 마음이 법의 목적임을 밝히십니다. 회당 안에 마른 손을 가진 사람 앞에서도 사람들은 질문을 던져 예수를 고발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며, 사랑을 유익의 계산보다 앞세우십니다. 우리는 내 재산인 구덩이에 빠진 양은 급히 끌어내면서, 이웃의 고통에는 왜 망설이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옥죄려 주어진 쇠사슬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안전하게 걷도록 그어진 경계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니 법을 들고 서로를 겨누는 독한 말의 화살을 내려놓고, 주님처럼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온유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아” 꾸짖으신 대상은 율법을 사랑보다 높여 사람을 도구로 삼는 마음이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아주 작은 순종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시편 한 구절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고, 그 말씀이 귀를 통해 심장에 닿도록 잠시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자비를 실천하십시오. 따뜻한 문자 한 통, 경청의 시간, 작은 식탁의 나눔이면 충분합니다. 안식일은 담이 아니라, 자비의 문입니다. 읊조린 말씀이 우리 안의 비판의 독을 해독하고, 사랑의 숨결이 되어 꺼져가는 심지를 다시 밝히게 하소서. 오늘 우리의 입술과 손이 주님의 온유를 닮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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